저는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야자는 저녁 10~11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자율학습을 하는 방식이고 그때는 선생님없이 학생들끼리 책상에 앉아서 스스로 공부를 하다가 종이 울리면 집에 가곤 했습니다.
이름은 자율학습이지만 실제로 자유롭게 운영되진 않았습니다.
수시로 선생님들이 몰래 돌아다니며 떠든 학생들을 골라내서 빠따를 쳐댔기 때문입니다.
공부가 하기 싫어도 잠시 쉬고 싶어도 그럴 순 없었습니다.
잠시 졸고있어도 역시나 문을 열고 불러내서 빠따를 쳐댔기 때문입니다.
졸면 때리고 떠들어도 때리고 기계처럼 조용히 공부만 하라는 건데 이게 어떻게 자율학습인지 모르겠습니다.
공부가 지겨워서 잠시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읽는 것도 역시나 걸리면 빠따를 맞고 만화책이나 소설책은 모두 압수를 당했습니다.
책방에서 빌린 책인데도 압수를 당했고 그나마 좀 착한 선생님들은 끝나고 집에 갈때 찾아가면 돌려주기도 했었지만 애들 패기로 유명한 선생님들은 그렇게 빼앗아가서 아예 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미친 것들 참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야자는 하기 싫다고 해서 뺄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까지 설득해서 동의서를 작성해갔지만 담임선생님은 니가 빠지면 다른 애들도 빠지고 싶어할 거고 그렇게 줄줄이 다 빠지게 되면 책임질 거냐는 말로 제 의견을 무시했습니다.
부모님이 동의를 해도 야자는 빠질 수 없었고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때는 일요일까지도 야자를 나가야했습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학교에 가는 삶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는 못 할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학교에 있던 학원에 있던 공부를 할 것이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은 학교에 있어도 딴 생각이고 수업 중에도 딴 생각을 합니다.
결국은 그 모든 공부 분위기를 만든 이유가 좋은 대학교에 진학해야하는 친구들을 위해 조성한 것이고 학교는 매년 대학교에 몇 명을 보냈는지 현수막으로 보여줘야하기 때문에 나머지 학생들이 이에 희생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생 개개인의 자유는 필요하지 않고 오로지 학습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자간자율학습에 100% 참석하도록 한 것이고 심지어 야간자율학습비까지도 내야했습니다.
내 돈을 주고 참석해서 떠들거나 딴 짓을 하거나 졸면 빠따를 맞아야했던 학창시절이 과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을까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간 친구들이야 그런 생활 덕분에 대학교에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오로지 피해자로 인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야자 시절에 저는 라디오를 듣는 게 그나마 가장 큰 위안이었습니다.
1분단 창가쪽에 앉아서 왼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공부를 하는 척 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도 걸리면 빠따를 맞고 압수당했기 때문에 정말 조심스럽게 들어야했습니다.
목에서부터 귀까지 오른쪽에서는 안 보이도록 딱 붙여서 이어폰을 들었고 라디오를 들으면 시간도 잘 가고 재밌는 사연도 많이 올라오는데다가 랜덤으로 음악을 틀어줘서 더 좋았습니다.
내가 골라듣는 음악이 아닌 라디오DJ가 알아서 틀어주는 음악을 듣는다는 게 참 좋았는데 마침 듣고싶었던 음악을 딱 골라서 틀어주면 뭔지 모를 뿌듯함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오늘 문득 야간자율학습 시간표라고해서 진짜 이런 시절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글이 올라왔었는데 그 시절 참 정신나간 학교들의 행태가 다시 한 번 떠올라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