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화여대 가는 길에 있었던 사직분식 청국장

군대를 전역하고 아부지를 따라서 방수 일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른데서 아르바이트할 거 없이 아부지 따라서 일하면 일당을 주시겠다고 해서 따라다니던 시절이었고 그때는 가방에 작업복을 넣어서 여기저기 지하철을 타고 다니곤 했습니다.

덕분에 서울에 있는 여기저기를 많이 다녔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막일을 할때는 가장 기다려지는 것이 바로 점심인데 힘들게 일하다가 밥 먹고 하자는 말이 나오면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배화여대 쪽에서 일을 할때는 날씨가 참 좋았던 계절이었습니다.

봄 아니면 가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배화여고 옥상에 우레탄방수를 하는 일이 들어와서 거의 한달인가 그쪽에서 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옥상을 싹싹 깨끗하게 비질을 하고 그 바닥에 크렉이 간 곳이 있으면 실란트로 채워주고 다음에 하도, 중도, 상도를 발라서 우레탄방수를 했었는데 워낙 예전에 했던거라 대략적인 기억만 납니다.

그렇게 일을 하고 배화여대 아랫길로 내려와서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뭔가 거기서 좀 더 사직단 있는 쪽으로 가면 엄청나게 구리구리한 냄새가 났었습니다.

진짜로 진한 청국장 냄새였는데 같이 일하던 이씨아저씨도 그 냄새를 맡았는지 나중에는 저길 가보자고 하시더군요.

나중에서야 거기가 사직분식이라고 식객에도 나온 청국장으로 유명한 집이라는 걸 알았는데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여대생들도 냄새가 심한 청국장을 좋아하는구나 뭐 그렇게만 보고 넘겼던 가게였죠.

그도 그럴것이 저희는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서 일을 하던때라 점심을 먹기 위해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작업복 그대로 입고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음식점은 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없는 식당이나 가서 후딱 먹고 나오는 게 일상이었으니 저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그냥 구경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점심을 먹기 위해서 귀찮게 옷을 갈아입고 그럴 노가다꾼은 없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인가 그때는 갑자기 비가 와서 현장에 갔다가 그냥 일을 못 하고 집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방수는 원래 비가 오면 일을 못 하기 때문에 비가 애매하게 올 것 같다고 하면 현장까지 가봤다가 오면 다시 집으로 가고 안 오면 일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 날은 안 올 것 같아서 갔는데 일을 하던 도중에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해서 결국은 그냥 밥이나 먹고 집으로 가자고 했었습니다.

밥은 항상 가던 식당을 갈까 하다가 같이 일을 했었던 이씨아저씨가 저기 청국장 냄새가 엄청 많이 난다면서 그쪽으로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냄새가 아주 심한 청국장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던 시절이어서 왜 저런데를 가자고하나 그런 생각만 했습니다.

좁은 실내에 신발도 벗고 들어가는 식당이었고 엄청 꼬릿꼬릿한 냄새가 아주 진하게 풍겨오니 이게 청국장 냄새인지 아니면 신발을 벗은 누구 발에서 나는 냄새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강력한 꼬릿함의 향연이었습니다.

청국장은 뚝배기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국그릇에 투박하게 담겨나왔는데 꼬릿함에 취해 우걱우걱 열심히 퍼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맛이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안 나고 처음부터 끝까지 꼬릿했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점점 지나니 그때 먹었던 그 맛이 그리워지고 그 장소가 계속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혹시 지금도 남아있는지 궁금해서 배화여대 가는 길에 있던 청국장집을 검색했더니 지금은 아예 없어졌다고 나와있었습니다.

사직분식이라는 이름이었다는 것도 지금 알았고 그 뒤에 사직골이라는 이름으로 시청에 자리를 잡았다고 써있었는데 그 마저도 지금은 폐업을 했다고 나왔습니다.

이제는 무지하게 꼬릿꼬릿한 냄새도 구수하게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음식은 남아있지를 않으니 참 아쉽다는 생각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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